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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전라북도 당시 이 지역에서 백화양조라는 주류 회사의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조금 낯선 기업일 것입니다.

1945년에 설립된 백화 양조는 청주,인삼주 같은 다양한 술을 만들어 입지를 쌓은 기업이였습니다.
현재에는 대기업에 인수합병이 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주력상품이던 백화수복만큼은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화양조의 본거지는 전라북도 군산입니다.
당시 백화양조 회장의 아들인 '강군'은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워낙 부잣집 아들이여서 주변 학교 여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였다고 합니다.

참고 이미지 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군상의 모여자 고등학교에는 아주 예쁘기로 소문난 '김양'이 있었습니다.
'김양'은 주변 남학생들로 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 '김양'과 '강군'은 오랫동안 교제 중이였습니다.
그둘은 초등학생때 동급생이였고 자라면서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져 고등학교때 까지 교제를 이어갔는데,

이두사람의 교제를 가장 기쁘게 여기건 '김양'의 가족들이였습니다.
'김양'의 집안은 가난한 집안이였고 '강군'의 집안은 매우 부자였죠. 그래서 그런지 '김양'도 이걸 이식하고 있었는데요.
같은 해 4월에 김양이 어머니한테 "엄마, 우리도 잘 살 수 있어" 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죠.

아마도 김양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고등학교3학년에 결혼을 생각하는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젊은 두 남녀가 장미빛 미래를 꿈꾸던 어느날 뜻밖에 소문이 시작됩니다.

참고 이미지 입니다.


'강군'의 같은 반 친구가 이런말을 했습니다
"야! 네 여자친구 김양 걔 남자 관계 되게 복잡하고 아주 까져가지고 문란하다더라"
앞서 김양이 외모때문에 군산에서 유명했고 이로 인해 강군은 여자 친구의 소문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군의 의심은 점차 커져갔고 결국 여자친구를 미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당시 김양은 학교 등교 전 이른 새벽에 과외 수업을 받았습니다.
남자친구 이던 강군이 바로 이때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외를 핑계로 누굴 만나는건 아닌지 의심을 했고 그래서 그날 새벽 여자친구인 김양의 뒤를 밟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의심할 만한 점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이 의심의 불씨는 사그라 질주 몰랐고 오히려 더욱 커져만 갔는데...

4월 8일 새벽 그날도 김양은 과외를 하러 일찍 집을 나서던 순간 강군이 김양의 앞을 막아섰고
할말이 있다며 김양을 백화양조 공장으로 대리고 갔습니다.
새벽 시간의 공장은 매우 고요했고 강군은 김양을 데리고 2층 실험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강군이 본격적으로 여자친구인 김양을 추궁하기 시작했죠.
"너 나몰래 딴 남자 만나? 너 다른 남자랑 잤다며?"
이런 질문들이 이어졌고 강군의 질문은 더욱 가격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인 김양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죠. 소문만 듣고 자길 추궁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억울하기도 했을 겁니다.
"나는 너 말고 만나는 사람없어..." 라고 말해 보지만 강군은 그런 김양이 자신에게 뻔뻔하게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더욱더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한 김양은 자신이 결백하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스스로 옷을 하나씩 벗고 강군앞에 서게 되는데....
"너 내가 다른 남자랑 성관계 했다고 했지?! 그런 증거 있어 나한테 찾아보라고.." 김양은 옷을 벗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데도 강군은 김양을 믿지 못하고 이상황에 김양은 수치심과 억울함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 배신감 등을 느꼈을 겁니다.

이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강군이 김양을 몰아부치던 중 김양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게 되는데,
그런 김양을 강군이 그녀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었고 김양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강군의 머릿속엔 김양이 죽었다고 생각이 들었고,마침 출근하던 몇몇 직원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고,
강군은 그 순간 나 때문에 죽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직원들에게 들키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몰려와

김양의 생사를 확인해 볼 생각도 없이 이 사건을 감춰야 되 라는 사건의 은폐만 생각하게 되었고.
이 때 강군의 눈에 들어온건 실험실에 있던 대형 술통 강군은 김양을 들어서 술이 들어있던 대형 술통에 집어 넣게 되었습니다. 김양은 그 술들과 함께 가라앉았고 강군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양이 벗었던 옷을 가지런히해 술통 앞에 놓게 됩니다.
마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 앞에 두었던 것이었죠.
이후 강군은 직원들의 눈을 피해 현장에서 벗어 났고,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렇게 약 20일이 흘렀고 직원들이 김양의 옷은 발견하지 못한것 같고 실험실에서 기계를 돌리다가 마침 술통에 들어있던 김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각 수사가 시작 되었고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건 김양의 남자친구였던 강군이였습니다.

 

사건 현장이 강군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이라던 점과 사건 발생 5일전에도 김양 집에 놀러 갔었고,

집에 전화를 해 김양과 약속을 잡았다는 점등 모든 면에서 강군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죠.

 

예상 대로 강군은 범행 일체를 완강히 부인하게 되는데...

이때 경찰이 제시했던것은 거짓말 탐지기 였고, 강군의 경찰들이 한 질문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했으나, 거짓말 탐지기 반응은 모두 그 반대를 지목하고 있었죠.

 

거짓말 탐지기 결과와 경찰의 끈질긴 추궁에 못이긴 강군은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강군의 주장은 김양이 죽은줄만 알고 술통에 넣었다였는데요. 검찰은 강군을 살인죄로 기소하였고,

강군의 변호사측은 거짓말 탐지기만으로 살인이 인정이 되냐!가 핵심이 되어 공판을 이어갔죠.

 

법원은 다른 증거들을 토대로 강군의 범행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강군은 (단기 2년 6개월, 장기 3년)이라는 징역을 받았죠. 단기,장기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내려지는 형이였는데요. 수감 태도에 따라 장기,단기를 나눌수 있었죠.

김양을 죽여놓고 고작 징역 3년이라니 ...... 너무 짧은 판결이 내려졌죠.

 

1981년에 강군은 만기 출소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의 근황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죠. 그 후 백화양조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 회사의 이미지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 지역신문에 강군의 내용을 다룬 신문이 발매 되자. 전매 모두 사드렸고 폐기했으며 이과정은 여러차례 행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어느샌가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는 괴담처럼 퍼지게 되는데

해당 사건일자에 만들어진 백화 소주가 김양의 시체로 만들어진 술이다라는 자극적인 소문들이 퍼지게 되며 백화양조는 결국 다른회사에게 인수합병을 당하게 됩니다. 

 

해당사건은 너무 오래전일이라 디테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한사람을 무참히 죽여놓고 고작3년형 밖에 안받은것은 어쩌면 그가 지역 부자집 아들이여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쓸쓸함만 남은 이번 이야기....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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